Random Thoughts/MBTI

대학시절 인프피 친구

어린밤 2022. 1. 31. 17:10

오랜만에 깊게 자긴 했다

아.. 꿈꿨어 대학시절 경험에 플러스 알파 돼서 

근데 일어나면 원ㄹ 까먹지 점점?

 

 

나 인프피고

대학교 때 단짝도 인프피였다. 

걔가 뭐랬냐면 1학년 첫학기 개강총회 뒤풀이때 자기는 빨리 집에가고 싶은 거 꽁꽁 숨기면서 앉아있는데 나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게 너무 티가 나서 그걸 안숨기고 저러고 있는 게 신기해서 나한테 다가왔더랬지?

근데 난 티낸 기억 없느데?ㄷㄷ 촉이라는 건 무섭네 아무튼 자연스럽게 친구됨 같은 인프피였으면서도 애니어그램이 달라서 속은 완전 다른 인간인게 신기하더라 

걔는 진짜.. 아기자기한 거 좋아하고 규칙적인 생활하고 되게 평화?중재형?이었다면 나는 4번. 밑도 끝도 없이 삽질하는데다 극단적이고 감정 기복 심하고 특히 그 나이땐 '불안정함'< 이거 하나로 설명이 되는 성격

걔처럼 아기자기한 거 예쁜 거 좋아하긴 하는데 물건을 사진 않음 관리를 못해서ㅋㅋ 좀 보다 나중에 까먹고 침대 밑 발견 후 쓰레기통행

우리는 2학년 때부터 같이 자취는 못하고 각자 방을 얻어 옆집 이웃으로 살았다. 둘다 누구랑 같이 사는 건 스트레스 받는 인프피들이었으니.. 그래도 혼자 있고 싶을 땐 혼자 있고 친구가 보고 싶을 땐 옆집 똑똑 해서 노트북 보고 있는 칭구 허벅지에 기대서 방해한다던가 침대에서 느그작거리고 있는 내 위에 친구가 그대로.. 개무거웠음

하지만 난 무게로 깔리는 기분을 좋아하니까. 

우리는 성격이 잘 맞았어.

너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면, 가식 뒤로 꽁꽁 숨다 결국 마음을 닫는 유형이었어. 근데 그 신호를 예민하게 캐치해서 

너 아까 뭐 안좋았지 맘에 걸리는데 말해봐< 하는 식으로 직설적으로 묻는 성격이었던 나.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니었으면 우리 그렇게 깊게 못친해졌을것같은데 아냐?

반대로 내가 뭔가 불편해하면 귀신처럼 알아채고 아무말없이 배려하고 자리를 옮기고 화제를 딴 곳으로 돌려 날 편하게 해주는 너. 진짜 나랑은 반대인데 그게 나를 또 편안하게 했어.. 나는 사소한 것을 건너뛰고 못보고 내 생각에만 매몰돼 있는데 너는 정말 작은 것에도 좋아하고 행복해하더라. 예를 들면 음식이 맛있다 이런 거 있잖아. 식당에 와도 아무 생각이 없는 나한테 항상 여기 이게 맛있다 저게 맛있다 환기를 시켜줘. 지금 눈앞에 있는 작은 것에 자잘하게 만족하고 좋아하는 마음 가짐이 상시 탑재되어 있고 그걸 나한테까지 전염시켜. 그게 그 시절의 나를 살린 것 같아... 충격이었어. 그렇게 소소하게 좋아하면서 산 적이 없었거든.

너는 갑자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휴학을 하고 또 시험에 붙어서 일을 시작했어. 

나는 갑자기 미술 유학을 가야겠다고 수업을 다 째고 대학에 또 붙어서 해외로 나갔어. 

우리 둘다 우리가 만났던 대학교를 자퇴했어. 우리는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어. 네가 한창 자취방에서 공부할 때 같이 학교 축제를 즐기자고 했는데 안돼 공부해야 해 하면서 단칼에 자를 때 서운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 그건 네 성격이겠지. 자기보존성향이 정말 강해서인 이유라거나. 그래도 서운했어. 

난 그 뒤로 급격하게 정신건강(?)이 나빠졌어. 혼자도 괜찮다고, 아니면 자기 표현하는 활동을 해서 터져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어쩌면 네가 없는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어. 너같은 사람은 정말 희귀해. 나랑 비슷하게 불안정한 사람을 친구로 둬도 내 정신 건강이 좋아지진 않더라고. 모든 남자 친구는 기복을 안정시키기는 커녕 심화시켰어. 그 생각난다. 나는 잘 하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 참 위태로워 보인다고 들었던 기억. 그걸 몇번을 몇명한테서 들었더라. 그 때도 충격받았다. 

너는 공무원 생활을 카톡으로 구구절절 말했고 난 거기에 공감하는 것이 힘들었어. 원래 남의 넋두리 들어주기 힘들어하는데 넌 유독 그게 심했어. 반대로 당시의 나는 항상 너한테 남친 이야기 밖에 안했어. 유학 생활의 자잘한 행복을 너처럼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나봐. 다 놓치고, 에디가 이렇게 행동하는데 어떡하지? 하는 무의미한 상담만 했었다. 난 모르지만 너도 그게 재미있진 않았겠지. 그렇게 한해, 두해. 우리는.. 멀어졌어. 

우리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당장은 나한테 임팩트가 없었어. 어쩌면 지금까지도 크게 충격이나 슬픔없이 살아왔네. 당시엔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에 나도 적응하던 시기였고. 쿨함지상주의라고 해야 하나, 주변에 온통 처음보는 멋진 것들 투성이라 그걸 따라가기에 가랑이가 찢어지고 있었어. 그래서 오랜 관계였던 네가 별로 우선순위에 없었던 것 같아. 그냥 무언가를 깊게 생각할 시간이 부족한 생활이었어.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신이 일부러 데려다 준 것처럼 막 성인이 된 나를 가장 잘 케어해줄 도우미인 너를 내 옆에 잠시 데려다 놓은 것 같아. 그럼 멀어지게 한 건 더이상 같이 있을 이유가 없어서 그렇게 된 건가? 모든 관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어. 우리는 만날 때라서 같이 시간을 보냈고, 또 헤어질 때라서 서로 멀어진 건가? 다시 연락할 생각도 없고 어딘가 잘 지내겠지 하는 생각만 한다. 너는 너대로 인생을 살고 늙어서 죽겠지. 

그리고 죽으면 만나서 안녕, 이번 생에서 잠깐 함께 했던 영혼이네, 반가워

내 역할 어땠어

하면서 오랜 친구처럼 인사하겠지

갑자기 생각하니 눈물 팡 난다. 우리가 만났던 나이와 보냈던 시간들이 너무 완벽한 것 같아서.